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유 시리아군 (문단 편집) == 역사 == [[아랍의 봄]]의 여파로 2011년 3월부터 촉발된 [[시리아 민주화 운동]]을 강경 진압하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부의 방침에 반발하고 민간인 [[학살]]·[[고문]] 행위에 분노하여 탈영했던 군인들과 지역 주민들이 각지에서 민병대 조직을 결성해나가기 시작했다.[* 징병제 국가인 시리아군의 특성상 군 전역자들이 가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리비아처럼 정부 각료들이 우수수 빠져나가기를 바랐던 아랍 국가들은 생각보다 이탈이 심하지 않은 상황에 불만을 가졌으나 마침 시리아 공군(SAAF) 대령이었던 리야드 알아사드(Riad al-Asaad)[* 한편 자유 시리아군 창설자인 리야드 알아사드는 터키 정보부의 보호를 받으며 숨어지내고 있다. 아사드 정권이 자기를 암살할 거라는 과대 망상에 빠져 자유 시리아군의 어떤 직위도 맡지 않고 있다. 이 점 때문에 자유시리아군에 회의적인 관찰자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2015년 정부군 이들리브 대패 때 이들리브 시를 직접 방문하여 부정적인 여론을 불식시키려는 터키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였으나, 역시 그 이후로는 행방이 묘연하며 어떤 직위도 맡지 않고 도망다니고 있다. 이후로는 [[알 누스라 전선]] 계열 반군동맹체가 주도중인 반군 자치정부 시리아 구세정부에 가담해 고위직을 역임중이다. ]가 탈영하여 반군 측에 합류하였다. 리야드 알 아사드는 터키의 후원을 받아 2011년 7월 28일에 자유 시리아군(Free Syrian Army)내지는 시리아 자유군(Syria Free Army)이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들었으며, 시리아 전역의 반 아사드 저항군임을 홍보했다. 이 조직은 시리아 반군을 대표하지도 않았고, 6~7000명 정도의 세력을 갖춘 조금 큰 조직에 불과했으나 수많은 반군 분파들을 일일이 상대하기보다는 통합된 소통 창구를 원했던 서방 세력과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터키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시리아 반정부군의 대표로 선전되었다. 서구와 아랍국가들은 즉시 자유 시리아군이 시리아 야권연대가 선출한 임시 정부 휘하의 정규 군대임을 인정하였으며 지원 창구가 마련됨에 따라 마침 각개격파당하기 쉬운 점조직 형태에 불과했던 반정부 민병대들은 자유 시리아군에 가입하고 '최고군사회의(Supreme Military Council)'의 통제를 받을 것을 의결했다. 현 시리아 정부를 반대하는 의미에서 [[하페즈 알 아사드]]의 쿠테타 집권 이전에 사용하던 녹 백 흑과 별 세개의 시리아 국기를 사용했다. 전국의 반군조직이 가입하면서 10~15만명의 군세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서방국가들에게 아사드와 대등한 군사력을 갖춘 시리아 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서구의 기대와는 달리 지역주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깡패 범죄자나 지역 유지들의 마을 군대등이 잡다하게 모여있어 성향이 제각각이었고, 아사드 축출에는 뜻을 같이하였으나 이후 노선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들 달랐다. 명목상으로 최고군사회의가 존재하긴 했으나, 각지에 흩어진 분파들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사상이나 기득권을 놓고 반군 조직들끼리 점차 분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덕분에 2012년부터 다양한 전쟁범죄를 통제하지 못하면서 이미지가 급격히 실추되었다. 2012년 7월의 국경초소 점령 후 22명의 정부군의 팔다리를 절단하고 처형한 것이나, 7월 21일 터키인의 트럭을 탈취하고 짐을 팔아버린 다음 차를 중고시장에 넘긴 것, 9월 9일에는 알 하야트 알레포 중앙병원에 차량폭탄테러를 가해 30여명을 폭살시키고 점령한 것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망친 계기는 2013년 5월 오마리 알 파루크 여단 소속의 아부 사카르(abu sakkar)[* 본명은 칼리드 알 하마드(Khalid al-Hamad)]가 정부군을 죽이고 배를 갈라 심장과 간을 씹어먹는 것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유포시킨 것이 서구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 사람은 오마리 알 파루크 여단을 탈퇴하고 [[알 누스라 전선]]으로 옯겨서 전선 사령관으로 재직하다가 2016년 4월 정부군의 매복작전에 걸려들어서 사살당했다.] [*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시신 절단과 장기 섭취를 자행한 아부 사카르 본인은 생전에 살해한 병사의 핸드폰에서 그 병사가 여성 한 명과 두 딸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영상을 발견하고 격분해 저지른 일이라고 밝혔다. 사실 여부는 불명이다. ] 자유시리아군 참모총장은 이 사건을 비난했고 반정부 조직 시리아 국민연합은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등 시리아 내부적으로도 동요가 일었다. 반군 최고 군사 위원회가 아부 사카르를 죽던지 살던지 체포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 제재가 가해진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2013년부터 자유 시리아군의 본질적인 취약함이 서구 관찰자들에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2년 들어 정부군의 반격이 거세지고 처음에 합류했던 이슬람 반군세력들과의 갈등이 커지면서 전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국내 이슬람 반군그룹은 2012년 이미 내부 동맹조직인 시리아 이슬람 해방 전선(SILF)를 결성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다가 2013년 갈등이 격화됨과 동시에 이슬람 전선(Islamic Front)을 결성하고 탈퇴해 버렸다. 이들은 '''독자적인 인맥을 통해 사우디, 카타르의 압도적인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의 동부 고타를 거점으로 삼은 자이쉬 알 이슬람을 주로 지원했고, 이에 힘입어 자이쉬 알 이슬람은 각지에 지부까지 개설한 거대 조직이 될 수 있었다.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과 친밀했으며 시리아의 무슬림형제단 계열 조직을 주로 지원했고, 이들이 주류를 이룬 이슬람 전선의 주요 스폰서가 되었다. 종교원리주의 성향이 없는 평범한 반군 단체들은 지역 방어에 기반하고 있어 대규모 조직을 형성하기도 힘들었고 원정 능력이 없었는데, 원정 능력을 갖춘 종교원리주의 반군들이 자유시리아군을 탈퇴하면서 사실상 거의 의미가 없는 조직으로 전락했다. 2013년부터 이라크에서 IS가 시리아 내부로 진입해오고 정부군이 강력한 반격을 개시하며 [[헤즈볼라]]가 참전하면서 알레포 시 주변을 상실하고 주요 보급루트인 레바논 국경지대가 닫히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기가 어렵다고 판단되자 터키, 카타르, 사우디 같은 스폰서들이 점차 발을 빼기 시작했고 이에 노선 차이와 더불어 한정된 무기와 자원을 놓고 2013년 후반에는 자유 시리아군, 이슬람 전선, ISIS사이에 광범위한 반군들끼리의 내전이 발발했다. 이와 함께 자유 시리아군의 전력은 크게 쪼그라들었고 4~6만여명 정도로 관측되었다. 시리아에서 알 누스라, ISIS와 같은 알카에다 계열이 반군의 주도권을 차지하여 반군의 승리가 우방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미국은 통제력이 없는 시리아야권정부 최고군사회의를 무시하고 CIA를 통해 직접 시리아 내부의 반군 단체들에게 [[BGM-71 TOW|TOW]] 대전차미사일을 비롯한 무기와 자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세속적이고 온건한 반군을 선별하여 대전차무기와 자금을 지원하여 그들을 키움으로써 원리주의자들의 대항마가 되기를 바란 것이었으나, 반대로 통제력이 부족했던 최고군사회의는 이 CIA개입으로 완전히 아무 의미 없는 조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제로 세속주의 반군단체들은 자유시리아군에 가맹된 상태였음에도, '시리아 혁명전선(Syrian Revolutionary Front)', '남부전선(Southern Front)' 등의 별도의 반군연합체를 결성하는 등 자유시리아군의 중앙지휘부인 '최고군사회의(Supreme Military Council)'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은 앞서 언급한 자유시리아군 태생의 특성도 있겠으나, 개별 파벌들 입장에서는 무기를 받기 위해 자유시리아군에 합류한 것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도 CIA가 알아서 무기를 가져다주니 최고군사회의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통합된 반정부군으로써의 자유시리아군은 이 시점에서 이미 소멸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결국 이후 반군 조직들은 지역별로 이슬람 반군들과 협력하여 지역 작전실을 만들어 통제를 받거나, 반군연합체에 가입하여 알카에다의 지휘를 받는 등 사실상 원리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반정부 투쟁에 협력하면서 명맥을 유지했다. 일부는 시리아 정부군에 항복하고 정부군으로 재입대하거나, 쿠르드족이 주도하는 시리아 민주군(SDF)에 가입해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랫동안 자유 시리아군의 이름이 매스미디어에서 언급되었는데, 지나치게 복잡한 현지 상황과 수백개에 달하는 조직들을 설명하기보다는 자유 시리아군이라는 이름이 알기도 쉬웠고, 독재자 아사드에 대항하는 민주 시리아의 정규군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에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2017년까지만 해도 구 자유시리아군 계열 그룹들이 제법 남아 있었으나, 2018년 수도 다마스쿠스의 동부 고타 함락을 시작으로 홈스 주 알 라스탄 지역, 그리고 최대의 반정부 거점이었던 남부 다라 주가 정부군의 작전에 통째로 함락되면서 최대의 마지막 자유시리아군 연합체 "남부전선"이 완전히 소멸했다. 일부 조직은 정부군에 항복하고 현지 경찰로 전향했거나 군대에 재입대했고, 항복을 받아들이지 못한 반군들은 정부측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반군이 장악한 이들리브 주와 알레포 주 북부로 떠났다. 현재 자유 시리아군의 깃발은 터키가 후원하는 괴뢰 정부 시리아 임시정부와, 그곳의 정규군을 표방하며 터키에 의해 통합군으로 재배치된 이른바 ‘시리아 국군’[* 관찰자들에게는 터키 지원 자유 시리아군 TFSA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이 이어받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국군의 구성 그룹들은 자이쉬 알 이슬람, 함자 사단, 술탄 무라드 사단과 같은 구 이슬람 전선의 원리주의 계열 그룹들이기 때문에, 더이상 세속주의 자유시리아군은 완전히 소멸했다고 볼 수 있다. 시리아 국군의 경우 시리아 내전이 큰 전투가 없는 소강 상태에 접어듬에 따라 사실상 터키의 대외 개입용 용병 수급처로 그 역할이 바뀐지 오래다. 그 시작이었던 [[리비아 내전]]에서는 GNA를 지원하기 위해 3천명 이상이 참전해 311명이 전사했으며,[[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는 아제르바이잔군 진영에 1천 2백명 이상이 참전해 최소한 64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반 후티 정당인 알-이슬라당을 지원하기 위해 [[예멘 내전]]에도 파병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일 뿐이지만 [[파키스탄군]]을 지원하기 위해 [[카슈미르]] 분쟁에도 참전할 수 있다는 관측 역시 제기되기 시작했다.[* 에르도안 정부의 막대한 후원을 받는 터키 PMC '''SADAT'''이 시리아 반군들을 고용해 국외로 파병하는 작업을 당담하고 있다. 이 회사는 또한 세계 각지의 이슬람주의 반군들의 현대화를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